예술인

김수악 (金壽岳, 1925. 12. 10 ~ 2009.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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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18-11-0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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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악(金壽岳, 본명:김순녀金順女, 호:춘당春堂) 약력
1925년 12월 10일 경남 거창군 안의읍 서하리 출생

1946년 논개비 건립 모금을 위한 창극 <대춘향전>
1949년 1회 진주개천예술제에 출연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로 지정
1969년 목포 유달국악원과 1971년 광주 호남국악원에서 후학양성
1973년 진주민속예술원 설립하고 경상대학교, 진주시립국악원, 진주교대 등에서 후학양성
1981년 대한민국사회교육문화상 금상을 수상
1983년 한국명무전 출연 - 진주교방굿거리춤
1985년 진주시문화상 수상
1995년 34회 경상남도 문화상 수상
1997년 1월 30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예능보유자로 지정
2008년 10월 8일 개천예술제 '진주교방굿거리춤 발표회' 출연
2009년 3월 1일 노환으로 타계. 향년 85세. 빈소는 진주 경상대병원 장례식장 102호. 장례는 3일장, 발인은 3일 오전 9시, 장지는 경남 사천 완사 선영.


* 아랫글은 문화관광부 선정 2004년 8월의 문화인물 김창조의 달 기념 특별 기획 전시회 도록 책자 [산조, 악기로 노래하는 삶의 이야기] (서울:국립국악원, 2004년 8월 3일 발행, 비매품) 96~98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가무악 명인 김수악 증언
현장 조사, 정리/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김수악(金壽岳, 본명:金順女)은 1925년(문서상:1926년) 12월 10일(음력) 경남 거창군 안의읍 서하리(함양군 서하면)에서 부친 김종옥과 모친 유봉길 사이의 7녀 가운데 2녀로 태어났다.
김순녀라는 본명은 할머니가 지어 주었으나 아버지는 그 이름으론 명이 짧다며 김수악으로 개명해 주었다 한다.
김수악의 부친 김종옥은 거문고, 가야금, 해금, 피리 명인이었고 명창 박초월과 산 적이 있다. 김종옥은 밑으로 여동생 2명과 남동생 1명이 있었다. 김종옥은 딸 김수악을 세습무당 집에 가서 살게 하여 김수악이 6세 무렵에 세습무당의 수양딸이 되었고 당시 김수악은 1년간 함양에서 김모씨에게 양금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때 함양의 한 사랑채에서 김수악(양금), 김종기(거문고), 김종옥(해금), 오태석(가야금), 박종기(대금), 성명 미상(피리/장고)이 영산회상을 연주하고 박초월이 이를 구경한 적이 있다고 한다.
김수악의 숙부는 판소리, 가야금, 거문고 명인 김종기이다. 옛 국악인 중에 김종기는 2명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김수악의 작은아버지 김종기는 국악 대명인 박한용한테 국악을 사사했고 또다른 김종기는 무명의 국악인이라고 한다.
김수악의 숙부 김종기는 35,36세 때 세브란스병원에서 위암으로 타계했는데 여자 문제 때문에 일찍 작고한 것이라고 한다. 김수악의 숙부 김종기 장례식 때 많은 사람이 운집했었다 한다.
김수악의 두 살 위 언니 김취란은 강태홍과 박상근한테 가야금을, 한갑득에게 거문고를 배웠는데 박정희 대통령 사망 무렵 작고했다 한다. 한갑득이 김취란에게 거문고산조를 잘 탄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김수악은 9세 때 권번에 들어가 김옥민에게 춤의 기본을 익혔다. 그외에도 김수악은 한성준한테 승무를 사사했고 8,9세 때에는 남원 운봉에서 김록주에게 소고무, 교방굿거리춤을 배웠다. 그리고 12세 때 최완자 문하에서 진주 검무와 시조를 익혔다 한다.
김수악은 정정렬, 유성준, 이선유에게 판소리를 배웠고 마산에서 심청가가 장기인 김준섭한테 판소리를 사사한 바 있다. 또 김수악은 전라도 사람이자 판소리 명창인 전두영에게 구음을 익혔다. 그리고 김종기(김수악의 숙부), 강태홍, 이순근, 박상근 문하에서 가야금과 아쟁을 배웠다.
김수악이 유성준에게 소리를 배운 것은 그의 나이 9세 때인데 당시 임방울, 신숙과 함께 하동 쌍계사에서 다섯달 가량 춘향가, 적벽가, 수궁가를 사사했다 한다. 그때 수업시 유성준이 김수악에게 북반주를 하라고 했다 한다.
이선유는 당시 김수악 자택 인근 마을에 살았다. 이선유 딸 이영월이 김수악보다 댓살 연상인데 현재 서울에서 살고 있다 한다. 진주 검무 명인 이윤례와 이선유는 친척간이고 작곡가 이재호는 이선유의 조카라고 한다. 김수악이 이선유에게 배운 소리는 단가 <이몸이 한가하여>, <인호상이>, <천하태평>, 춘향가 중 <이별가> 등이라 한다. 김수악은 박중근, 정종근(정중권), 김해 김록주에 대해선 들은 바가 없다고 한다.
김수악은 한때 목포국악원, 광주 호남국악원에서 국악 사범으로 근무한 바 있다. 그러던 중 1966년 2월 9일 이윤례, 최예분, 이음전과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 검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성계옥은 1976년에 추가로 그 분야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검무는 본래 탈을 쓴 무동이 추던 것이라고 한다. 본디 신라시대 일곱 살 소년이 적국에 들어가서 칼춤을 추다가 왕을 찔러 죽이고 본인도 죽은 전설에서 유래된 궁중무용으로서 그것이 오랜 세월 전해 내려 오다가 탈은 벗고 여무(女舞)로 변천된 것이라 한다.
김수악의 말에 의하면 예전 명인 최완자, 박국엽, 이인자, 임한산의 검무가 영남 제일의 춤이었다고 한다. 김수악의 제자는 차옥수(진주교대 교수)를 비롯해서 김진홍(부산/무용), 송화영(서울/무용), 황갑도(서울대 국악과/창), 김준호(부산/창과 무용), 강금실(서울), 손심심(부산), 정필순(진주), 정행금(진주), 강혜숙(진주), 고재현(서울), 최정희(광주), 송미령(서울) 등 100명 가량 된다고 한다.
김수악은 현재 경남 진주시 상봉서동에서 한국국악협회 진주지회 사무실겸 후진 양성소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김수악은 여러 옛 명인들의 국악 연주 녹음 테입(구음, 단가, 판소리, 산조 등)을 소장하고 있다 한다.(1996.3.8,1998.6.12,1998.8.14,2001.4.26~27.김수악 증언)

원본출처 - 국악음반박물관
http://hearkorea.com/gododata/gododata.html?g_id=8&g_no=1693